22-03-31 아이슬란드 케플라비크에서 보르가르네스로(From Keflavik to Borgarnes, Iceland)

2022. 9. 6. 01:31Diario de Viaje/Iceland

일출과 오로라를 함께 보았다. 황홀했던 순간
새벽녘이어서 다른 피사체들을 오로라와 함께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함께 간 일행이 갑자기 새벽에 나를 깨웠다. 오로라가 떴다는 것이었다. 허겁지겁 옷을 챙겨입고 카메라 장비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아직 해가 뜨지는 않았지만 밖은 이미 상당히 밝아져 있었다. 일행이 가리키는 방향에 휴대폰 카메라를 비춰보았다. 오로라가 아니라 낮게 뜬 하얀 구름이었다. 이런. 또 오로라와 착각을 했군. 잠을 일찍 깨운 일행이 살짝 원망스러웠다. 밖으로 나온 김에 새벽 공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주변을 감상하였다. 외딴 곳에 있는 오두막이라, 비슷한 오두막 몇 채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곳이었다. 다른 방향의 하늘을 살펴보다보니 구름이 번쩍번쩍 하는 것 같았다. 옅은 색으로 오로라의 초록빛이 보였다. 오로라가 떠 있구나. 황급히 일행에게 다른 방향에 오로라가 떠 있다고 알렸다. 주위가 점점 밝아오고 있었다. 해가 막 떠오르려고 했다. 오로라를 보고 사진으로 담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은 급해졌다. 카메라 렌즈의 노출 시간을 길게 설정하지 않아도 사방이 밝아서 충분히 오로라가 담겼다. 특히 주변의 피사체들이 사진에 함께 담길 수 있는 조도였다. 탄성을 지르며 오로라를 촬영하였다. 이 오로라를 또 보겠다고 어제 그렇게 차를 달렸었는데, 오기 잘 한 것 같다. 약 30분 정도가 흘렀을까. 해는 떠올랐고, 머리 위에 여전히 남아있을 오로라는 햇빛으로 인해 볼 수 없게 되었다.

오로라님 영접
오로라님 영접

새벽에 오로라님을 영접하고 나니 극도의 흥분상태에 빠짐과 동시에 잠시 혼란스러워졌다. 새벽에도 볼 수 있는 것이 오로라란 말인가. 그 동안은 밤에만 오로라를 볼 수 있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일출과 오로라를 한번에 같이 본 셈이었다. 일출 직전만 해도 하늘의 색깔이 너무도 아름다운데, 거기에 오로라의 신비함까지 더해졌다. 하루의 시작이 정말 짜릿했다.

오두막 위에 오로라

가볍게 아침을 먹고 오늘은 아이슬란드 서쪽의 스나이펠스네스(Snaefellsnes) 반도를 둘러보기로 계획을 세웠다. 역시나 구름 예보를 확인하고 오로라를 볼 가능성이 높은 위치를 찾았는데, 스나이펠스네스 반도의 서쪽 끝에 가면 오로라를 관측할 확률이 있어 보였다. 차를 몰고 북쪽으로 향했다. 케플라비크(Keflavik) 국제공항을 지나가니 아이슬란드에 방금 막 도착한 여행객 같았다. 첫날 묵었던 코파보귀르(Kopavogur)를 지나서 1번 도로에 접어든 다음 북쪽으로 차를 달렸다. 중간에 해저터널을 지나갔다. 예전에 거가대교를 지나 해저터널을 통과해본 경험이 있었는데, 아이슬란드의 해저터널은 길이 더 좁고 어두워서 뭔가 진짜 터널을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스나이펠스네스 반도로 가는 1번 도로에는 과속 단속 카메라가 많다는 얘기를 듣고 최대한 천천히 운전을 했다. 내 차를 추월해서 가는 차들이 많이 있었다.

하룻밤을 묵었던 숙소의 모습

보르가르네스(Borgarnes)에 들러 주유를 하고 마트에서 장을 보았다. 아이슬란드에서 처음 가보는 '보너스'라는 마트였다. 예전 글에 적어놓기는 했지만 그동안 가보았던 마트들 중 가장 크고 물건 종류도 다양한 곳이었다. 아이슬란드 슈퍼마켓의 퀄리티는 보너스 >= 네토 > 크로난 순서인 것 같다. 1번 도로는 보르가르네스를 지나 북동쪽으로 꺾어지는데, 스나이펠스네스 반도로 가려는 것이었기에 북서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멀리 아름다운 피요르드의 설경이 끝없이 펼쳐졌다. 운전자를 즐겁게 해주는 장면이었다.

이트리 퉁가 해변
해변에 있었던 고래 척추뼈

이트리 퉁가(Ytri Tunga)라는 스나이펠스네스 반도 남쪽의 해변에 잠시 들렀다. 운이 좋으면 물범을 볼 수 있다고 했다. 구글 맵에서 리뷰를 살펴보다보니 얼마 전에 고래 사체가 떠내려와 해변에 그대로 있다는 리뷰가 있었다. 차에서 내려 얼마 안가니 거대한 고래의 척추뼈가 해변에 남겨져 있고 그곳에서 악취가 풍겨져 나오고 있었다. 자연사 박물관에 온 듯 했다. 썰물때여서 그런가 해변에 여러 바닷물 웅덩이가 있었고 미역 같은 해조류들이 있었다. 아이슬란드의 차가운 바다에 잠시 발을 담궈 보았다. 저 멀리 사람들이 모여있기에 대표로 한번 갔다와보기로 했다. 엄청 미끄러운 미역밭을 한참 지나서 사람들이 있는 곳까지 가보니 물범들이 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가는 도중에 물이 찰랑찰랑거리는 구간이 있었는데, 다시 밀물이 되어서 물이 차오르는 것 같았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물범들의 사진을 몇 장 촬영하고 다시 해변으로 돌아가려는데 결국 물이 다시 차올라 길이 거의 끊겨버렸다. 서둘러 신발을 벗고 장비를 다 어깨에 울러맨 상태에서 발목까지 차오른 차가운 아이슬란드의 바다를 걸어서 나왔다. 조금이라도 머뭇거렸으면 큰일 날 뻔 했다.

귀여운 물범들
아나스타피의 돌다리

다시 차를 몰고 아나스타피(Anarstapi)로 향했다. 그 곳에는 멋진 돌다리가 있다고 해서 갔는데 처음에는 찾기가 쉽지 않았다. 돌다리를 찾아 아찔한 사진을 찍고 해안 절벽을 따라 걸으면서 아름다운 스나이펠스네스 반도의 해안 풍경을 감상하였다. 주차장에서 가볍게 늦은 점심을 먹고 스나이펠스네스 반도에서 가장 유명한 산봉우리인 키르큐펠 산(Kirkjufell)으로 향했다. 마법사의 고깔모자처럼 생긴 산봉우리인데, 멀리서 봐도 매우 특이하게 생겨서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주차장은 유료였다. 키르큐펠 산을 후경으로 해서 앞의 폭포를 장노출로 촬영하는 사진이 유명한 것 같아서 따라서 찍어보았다. 하지만 도착한 시간대가 애매한 오후의 시간대여서 그렇게 사진이 아름답게 나오지는 않았다. 일출이나 일몰 무렵에 와서 사진을 찍으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원래 계획은 키르큐펠 산 근처의 그룬다르피요르드(Grundarfjordur)에 숙박을 하면서 반도 서쪽 끝으로 오로라 헌팅을 하러 가는 것이었는데, 구름 예보가 바뀌어 반도 서쪽 끝에서 오로라를 볼 확률이 낮아져서, 다시 보르가르네스 근처까지 내려오기로 했다.

키르큐펠 산
키르큐펠에서 본 풍경
그룬다르피요르드의 모습

오늘 숙박을 하게 된 곳은 보르가르네스 근처 말 농장에 있는 오두막(에어비앤비에는 보르가르네스의 'Ragna님의 숙소'라고 나옴)이다. 숙박 예약을 할 때 보통 부킹닷컴과 에어비앤비를 이용했는데, 가끔씩 같은 숙소가 다른 가격(에어비앤비가 더 저렴)에 나오는 경우가 있었다. 이번에는 에어비앤비를 통해 예약하는 것이 더 싸서 에어비앤비를 이용했다. 오전에 신나게 달려왔던 길을 보르가르네스까지 다시 되돌아가려니 힘이 빠졌다. 스나이펠스네스 관광안내소(Snaefellsnes Visitor Center) 근처 외딴 곳에 N1 주유소가 있었다. 동부 피요르드 브레이쓰달스비트(Breiddalsvik)에 있던 N1 주유소에 들렀을 때도 생각했었던 것인데, 참으로 한없이 외딴 곳, 마치 세상 끝의 주유소 같았다. 그 곳에서 기름을 가득 채웠다. 함께 간 일행들은 모두 자동차 뒷자리에서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운전하는 차창 뒤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너무도 아름다운 노을이었다. 숙소에 도착해서 간단한 저녁을 먹었다. 또 오로라를 기다렸으나, 아쉽게도 밤에 오로라를 보지는 못했다.    

아이슬란드의 밤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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