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3-26 아이슬란드 코파보귀르에서 레이니벨리르로(From Kopavogur to Reynivellir, Iceland)

2022. 8. 15. 00:51Diario de Viaje/Iceland

1번 도로, 황량함이 너무 좋다.

푹신한 침대에서 깊은 잠을 잤다. 바르셀로나의 집은 바닥난방이 없고 외풍이 있어 으슬으슬 추웠었는데, 아이슬란드의 숙소는 단열이 잘 되어서 그런지 내부가 후끈후끈하였다. 아이슬란드 남서쪽 수도 레이캬비크 근처에서는 아직도 화산활동이 일어나고 있고, 숙소에서 물을 틀어도 온천물이 나오며, 그 온천물로 라디에이터 난방을 하는 것 같았다. 아이슬란드에 와서 가장 좋았던 것 중 하나는 따로 생수를 사서 마실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물이 워낙에 깨끗해서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찬물은 그대로 마셔도 되고, 물 맛도 매우 좋았다. 처음에는 잘 몰라서 뜨거운 물도 그냥 마셨는데, 온천물이어서 그런지 유황 맛이 났다. 

아이슬란드 여행의 성수기는 보통 7, 8월이라고 한다. 굳이 3월 이 시기에 아이슬란드 여행을 결심한 것은 오로라(Aurora, 현지에서는 'Northern Light'라고 한다)를 꼭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결론적으로 8박 9일간의 여행 중 오로라를 세 번 보았고(저녁 늦게 도착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은 어제를 제외하면 37.5%의 확률로 오로라를 만난 셈이다) 죽기 전에 오로라를 원 없이 보고 싶다는 꿈은 이루어졌다. 처음 와보는 아이슬란드여서 오로라 외에도 여러 아름다운 풍경들을 감상할 곳들이 많았다. 여행 동선을 어떻게 짜야 할 것인지 고민되었는데, 이 시기에 아이슬란드에 온 것이 오로라를 보기 위함이었고, 나머지 것들은 다음 기회에 아이슬란드에 또 와서 봐도 된다는 생각에, 최대한 오로라를 만날 확률을 높일 수 있는 여행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폭포가 쉽게 보인다.

검색을 통해 알게 된 여러 정보들을 종합해본 결과 오로라를 만날 확률을 높이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제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오로라는 수시로 아이슬란드 상공을 지나간다.' '오로라를 보기 위해서는 사방이 깜깜해야 한다. 즉 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밤에는 달이 떠오르는데, 달빛이 약할 수록 오로라가 더 잘 보일 확률이 높다. 오로라가 특히 더 잘 보이는 시간대는 밤 9시경부터 새벽 1시경 사이이다.' '오로라를 보기 위해서는 밤하늘이 맑아야 한다.'

오로라를 찾는데 사용하는 'My Aurora Forecast'라는 어플리케이션이 있다. 이 어플리케이션을 실행시켜 보면 현재 어느 위치에서 오로라를 강하게 볼 수 있는지가 표시되고, 오로라가 어디에 와 있는지가 표시되는데, 아이슬란드 여행을 하면서 가끔씩 보면 오로라가 강할 때는 이른 저녁이나 아침 무렵에도 아이슬란드 상공에 오로라가 와 있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그 때 오로라를 볼 수 없는 이유는 이미 해가 떠 있거나 아직 해가 지지 않아서 사방이 밝기 때문이다. 결국 오로라는 깜깜할 때에만 볼 수 있는데, 이는 결국 밤이 길어야 오로라를 만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여름의 아이슬란드는 백야 즉 해가 지지 않는 밤이 계속되는 곳이어서, 여름에 아이슬란드에 가도 오로라가 내 머리 위에 떠 있지만, 해가 지지 않아 오로라를 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밤에는 달이 떠오르는데, 보름달이 뜰 때도 있고 그믐달이 뜰 때도 있다. 이것은 음력 달력을 확인해보면 된다. 아무래도 보름달이 뜰 때보다는 그믐달이 뜰 때가 오로라를 찾기에 더 유리할 것이다. 하지만 사진을 촬영하는 입장에서는 밤이 너무 캄캄하면 초점을 잡거나 오로라를 선명하게 담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가 있다. 이번 여행에서도 너무 깜깜한 밤에 찍은 오로라 사진보다는 새벽에 해가 뜨기 직전에 촬영한 오로라 사진이 더 마음에 들었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밤하늘이 맑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슬란드 여행을 하면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다녔던 이유이다. 아이슬란드는 워낙에 날씨가 급변하는 곳이어서, 지금 화창하더라도 금방 구름이 몰려와 날이 흐려지곤 했다. 여행을 다니면서 보니 저녁이 되면 남쪽에 있던 구름대가 북쪽으로 밀려와서 하늘을 뒤덮어버리는 것 같았다. https://en.vedur.is/weather/forecasts/aurora/ 이 사이트에 들어가면 6시간 간격으로 3단계 구름(Lower Clouds, Middle Clouds, High Clouds)들이 어떻게 바뀌는지 예보가 나오는데, 그 구름 예보를 보고 밤에 구름이 없는 지역(구름 지도에서 하얀 부분)에 가서 오로라를 기다리면 된다. 

비크에 가기 전 고개에서 바라본 1번 도로, 아름답다.

두서없이 적었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구름 예보를 보니, 해가 지는 저녁 무렵에 요쿨살론 빙하 호수(Jokulsarlon)와 회픈(Hofn) 사이에 있는 레이니벨리르(Reynivellir) 지역에만 구름이 없다고 되어 있었다. 구름 지도에 조그맣게 하얀색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오로라를 만나기 위해 당초 계획을 변경하였다. 아이슬란드로 출발하기 전 세웠던 계획에 의하면 코파보귀르 숙소에서 약 100km 떨어진 거리에 있는 헬라(Hella)까지 가면서 구경을 하고 그곳에서 숙박을 할 생각이었는데, 결국 약 300km를 더 달려 레이니벨리르에 있는 할리 컨트리 호텔(Hali sveitahotel)에서 투숙하게 되었다.

점심식사, 이 날은 컵라면과 샌드위치를 먹었다.

숙소를 나와 조심조심 운전을 해서 1번 도로에 올랐다. 시내를 벗어나니 차들이 거의 없었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크베라게르디(Hveragerdi)를 지나기 전 고개 내리막길은 바로 앞의 차 전조등밖에 보이지 않아 아찔하기까지 했다. 셀포스(Selfoss, foss는 아이슬란드어로 폭포라는 뜻이다)와 헬라를 지나 비크이뮈르달(Vik, 비크)까지 길은 계속해서 남동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셀포스부터는 비가 내리지 않았지만 여전히 날씨가 흐렸다. 길의 오른쪽에는 평원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왼쪽에는 설산이 중간중간 드러나보였다. 비가 꽤 내려서 그런지 산의 곳곳에서 폭포가 흘러내렸다. 비크에 도착하기 전 고개에 잠시 차를 세워두고 내려 사진을 찍었다. 운치 있는 길이었다. 아이슬란드의 공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트롤 바위, 말 타는 사람도 있다.

비크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비크에 들어가기 직전에 과속카메라가 있는데 속도를 제 때 줄이지 못해 뭔가가 번쩍 하면서 카메라에 단속된 것 같았다. 이 곳에서 많은 여행객들이 과속카메라에 단속되어 벌금을 많이 낸다고 했고, 아이슬란드는 과속 벌금이 어마어마하다고 들었는데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제한속도를 많이 초과한 것이 아니어서 벌금이 많이 나오지는 않겠거니 생각했다(한 30만 원 정도 나올 것 같았는데 다행이도 단속이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비크에 가서 N1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렌트카 업체에서 N1 주유소 할인 토큰을 주었다) 무료 커피(렌트카 업체에서 나눠주는 쿠폰북의 쿠폰을 제시하면 마실 수 있다)를 한 잔 받아서, 크로난(Kronan)이라는 슈퍼마켓 뒤쪽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점심을 먹었다. 아이슬란드 여행을 하면서 주로 먹은 점심은 컵라면과 핫도그였다. 보통은 경치가 좋은 곳에서 차를 세워두고 밖에서 점심을 먹는다던데, 이 날은 날씨가 좋지 않아 좁은 차 안에서 먹게 되었다. 이 주차장에서는 레이니자라의 검은모래해변(Black Sand Beach Reynisfjara)과 신기하게 생긴 트롤 바위(Reynisdrangar)가 보였다. 사진을 찍기 위해 잠시 차량 밖으로 나갔는데, 바람이 빠르게 불어서 차량 문이 꺾일 뻔 했다. 아이슬란드의 미친듯한 바람을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사진을 후다닥 찍고 크로난 슈퍼마켓에 달린 화장실에 들렀다가 저녁 식사로 먹을 수프와 샌드위치를 사서 다시 길을 떠났다.

경이로운 순간

1번 도로는 비크를 지나 북동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 때부터는 끝없는 이끼 평원이 나왔다. 한 때 좋아했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라는 게임 속에 있는 것 같았다. 날씨는 서서히 개었다. 스카프타펠(Skaftafell) 국립공원 근처에 다다랐을 때 저 멀리서 구름을 뚫고 햇빛이 쏟아져 내렸다. 해를 쬔 설산과 빙하는 순식간에 다른 색깔로 빛이 났다.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신이라는 존재를 만난다면 그 때의 느낌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차를 세워두고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빙하가 근처에 있어서 그런가 공기는 서쪽보다 더 차가웠다. 함께 갔던 일행도 이 순간이 가장 극적이고 인상적이었다고 평했다. 

1번 도로, 사랑스러운 그 황량함
1번 도로, 설산이 보인다.

차를 몰고 다시 1번 도로를 달렸다. 얼마 가지 않아 그 유명한 요쿨살론 빙하 호수에 도착하였다. 원래는 이 곳에서 빙하 투어 같은 것을 하는데, 우리는 하지 못했다. 차를 주차하려고 하는데 창 밖으로 여행객들이 거센 바람을 헤치면서 걸어다니는 것을 보았다. 밖에 부는 바람이 장난이 아니구나. 차량 문짝을 조심조심 붙잡고 차에서 내렸다. 점심때 비크에서 느꼈던 바람보다 더 거센 바람이 불고 있었다. 이 곳에서 차량 문짝이 반대로 휘어지는 일이 많다고 했다. 눈 앞에서 푸른 빛을 띈 거대한 얼음 덩어리들이 물 위에 두둥실 떠서 천천히 바다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동안 봤던 빙하는 멀리 바위산처럼 멈춰 있는 것이었는데, 얼음 덩어리들이 물 위에 떠 있는 광경이 무척 신기했다. 얼음 덩어리들 주위로 물개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요쿨살론의 얼음덩어리들

요쿨살론 빙하 호수를 떠나 숙소로 향했다. 당일에 급하게 숙소를 잡다 보니 남은 곳이 할리 컨트리 호텔이라는 숙소 뿐이었다. 숙소는 넓은 잔디밭 위에 있었고, 단층이었다. 배정받은 방에서 북서쪽의 설산이 잘 보였다. 마트에서 산 수프와 샌드위치로 저녁을 때웠다.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밤이 되어 오로라를 찾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숙소 바로 앞에서는 인공광이 있어 밤하늘에 오로라가 있는지 없는지를 잘 확인할 수 없었다. 강하지 않은 오로라는 맨 눈으로 봤을 때 하늘에 있는 뿌연 구름처럼 나타나고, 그 뿌연 구름을 향해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대면 오로라인 경우는 화려한 초록색과 빨강색으로 보이고, 그냥 구름이면 하얀 색으로 보인다고 했다. 차를 몰고 빛이 없는 곳으로 무작정 향했다. 딱히 목적지가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1번 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5분 정도 향했다가 차를 세울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해 다시 숙소 근처로 돌아왔다. 1번 도로에서 숙소로 진입하는 진입로 옆 길가에 차를 세울 곳이 있었다. 미리 와 있는 캠핑밴 한 대 외에는 다른 차량도 없고 주변이 깜깜했다. 차에서 내려 하늘을 보는데 저 멀리 밤하늘에 희뿌연 구름이 심상치 않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보통 구름은 수평 방향으로 움직이는데, 하늘에서 번개가 내려오듯 구름이 번쩍번쩍 움직였다. 오로라였다. 드디어 처음으로 오로라를 본 것이다. 일행과 함께 조용히 탄성을 질렀다. 오로라가 조금 강해지면서 초록빛이 보였다. 얼른 카메라 세팅을 하고 사진을 찍었다.

처음 본 오로라

춤추는 오로라를 한참동안 바라보고, 촬영하였다. 촬영 결과물이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오로라 강도가 센 편은 아니었던 것 같다. 맨 눈으로 봤을 때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그렇게 화려하지는 않았다. 희뿌연 느낌에 가까웠다. 그래도 오로라를 보게 되었다는 것에 가슴이 벅찼다. 내가 삼각대를 세워놓고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고 어떤 외국인 커플 한 쌍이 다가왔고, 오로라를 어떻게 촬영해야 하는지 물어봐서 간략히 알려주기도 했다. 오로라가 점점 서쪽으로 넘어가는 것 같아 따라서 장소를 옮겼다. 레이니벨리르의 Ekra Glacier Lagoon이라는 이름의 호텔 근처에서 본 오로라는 초록빛으로 하늘에 거대하게 띠를 그렸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감격스러웠다.

밤 12시가 넘어 숙소로 돌아왔다. 추운 곳에서 얼어 있던 몸이 금방 녹았다. 감격에 겨워 맥주를 한 잔 마셨다. 평생토록 기억될 순간이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