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감

2009. 5. 17. 23:12斷想







사진만을 모아두었던 외장하드가 날아가버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더이상 인식이 안 된다. 방 한 구석에 놓인
필름스캐너가 나를 보며 씨익 웃었다. 제길. 필름카메라에 입문하기 전 수없이 많이 찍어두었던 수천장의 사진
파일들이 사라지게 될 지경이다. 차라리 영화를 모아둔 외장하드가 날아가버렸으면. 이러다 그것까지도 날아
가는 걸지도. 약 5년치 분량의 소중한 추억들이 오늘 한번의 쓰라림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숨이 막혀
온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이런 막막한 기분은 참 오랜만이다. 사람은 말이라도 할 수 있지만, 기계는 한번 안되
기 시작하면 답답하다. 반응이 없다. 타이밍도 절묘하다. 집안 대청소를 딱 마치고 나니 다른 일이 터진다.


지나간 것을 기록한 것에 대한 나의 집착은 약간 광적이다. 여행사진들이 날아간게 아쉽지만, 여행은 여행이고
사진은 사진이라 생각하면 그만이지만. 사진이 날아감으로 인해 내 인생에서 큰 부분이 아예 없어진 것 같다.
다시는 구할 수 없을 그런 소중한 사진들도, 그 사진이 없음으로 인해서 머리 속으로만 상상해야 한다. 이런.


한번 이런 일이 생기면 그 다음부터는 끝도없이 불안해진다. 자라가 한번 놀라서 목을 껍질 속으로 집어넣으면
다시 목을 내밀기까지 엄청난 시간이 걸리듯이 말이다. 안그래도 흉흉한 세상에 믿을 수 있는게 너무 없어졌다.




추억은 추억이기에 아름다운 것이지만, 그것이 아름답기에 또 추억인 것이다. 





이런 상실감 너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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