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없이 사는 기술

2008. 12. 6. 00:23斷想







+ 사랑은 이미 이 도시에서는 없어선 안 될 휴대용 종교가 되었거나 혹은 그 무슨 생존
전략 같다. 어쩔 수 없는 세속의 조건 운운하며 월화수목금 열심히 남의 골을 빼먹는 이
들마저도 때때로 술 마시고 진지해져서는, 한없이 순수한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는가. 세
상이 세속화될수록 사랑은 오히려 더욱 동떨어진 허공에서 거대한 뻥튀기 구름처럼 부
풀어 그 모든 세속성을 다 감당하고 있다는 듯 사기를 치고 있으니, 이쯤이면 사랑이란
것도 이미 이 도시를 방향 없이 몰고 다니는 형체 없는 유령이나 괴물이 돼버린 듯하다.


  이제는 우리들 말고 사랑이 몸소 세상 밖으로 여행을 떠나야 될 때가 온 게 아닐까?


  그간 이 세속의 뒤꼍을 감당하느라 고달프셨던 사랑 씨는 조금 때가 늦은 듯하지만 지
금이라도 낯선 길 위에 서서 도대체 자기가 누구인지 진중하게 물어야 할 것이고, 이곳
에 남은 우리들은 제 생활 속에서 '사랑 없이 사는 기술'의 기미라도 찾아 나서야 할 듯
싶다. +




+ 순정이란 것은 자고로 연약한 마음이 아니라, 들끓는 닫힌 욕망의 체계이다. 순정은 사
랑하는 그 사람에 대한 극진함의 탈을 쓰고 있지만, 실은 제 속의 이유로 그 사람을 독점
하려는 욕망이다. 심지어는 그 욕망이 저지당하고 명백하게 그 끝을 보았을 때조차, 남
자는 저 홀로 상처를 끌어안고 사랑의 끝을 모른 척하며, 여전히 제 속에 갇혀 사랑을 고
수한다. 상대도 없고, 자신의 무너짐도 없이 오직 거울 속에 갇혀 홀로 사랑하는 일.


  남자들아, 함부로 제 속에서 순정을 길어올리지 마라. 순정은, 이토록 사랑과 상처 사
이에 기생하며 꿈틀대는 그대의 증상에 다름 아니니, 증상으로나마 제 욕망을 누리려는
마음은 더없이 쓸쓸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 생의 모든 내용들이 하나같이 증상 아닌 것들이 있을까. 어찌 보면 증상
이라는 것도 다만 살아 있는 동안의 체험일 것이다.


  그 증상이 다하면, 색색으로 물들었던 나뭇잎들처럼 슬픔도 없이 다 져 내리니. +






유성용 <생활여행자> 中에서









반응형

'斷想'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가진단  (0) 2008.12.29
한꺼풀  (0) 2008.12.27
생활여행자  (6) 2008.12.03
너를 기억한다 나는  (0) 2008.11.17
  (2) 2008.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