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7-01 샤모니 몽블랑에서 생쟈네로(From Chamonix-Mont-Blanc to Saint-Jeannet)

2022. 8. 12. 00:47Diario de Viaje/France, Italy

샤모니를 떠나는 날, 날씨가 화창하였다.

샤모니 몽블랑에서의 3일이 지나고 오늘은 라벤더 밭으로 유명한 프랑스 발랑솔(Valensole) 지역으로 이동하는 날이다. 일기예보 상 오늘 샤모니 몽블랑의 날씨가 좋지 않다고 해서 몽블랑 패스도 2일권으로 구매했던 것이었는데, 예상과 달리 매우 화창하였다. 다만 몽블랑 봉우리는 여전히 구름 속에 있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발랑솔로 향했다.

가는 길은 꽤 지루했다. 어느덧 바르셀로나로 돌아갈 날이 며칠 남지 않았기 때문일까. 빠른 속도로 운전하는 프랑스 사람들의 운전스타일, 수없이 많은 고속도로 톨게이트와 비싼 통행료에도 이제 익숙해졌다. 발랑솔의 라벤더밭은 내일 구경하기로 했기에 곧바로 숙소로 향했다.

이번에 이틀 동안 묵게 된 숙소는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생쟈네(Saint-Jeannet)의 'Xavier의 숙소'였다. 숙소를 정하는 기준은 발랑솔의 라벤더밭과 가까울 것, 그리고 베르동 협곡(Parc naturel regional du Verdon)과도 가까울 것. 이 두가지를 만족시키는 장소로 원래 무스띠에 셍뜨 마히(Moustiers-Sainte-Marie)에 있는 숙소를 찾았으나, 오늘부터 요 며칠간이 수확하기 전 피어있는 라벤더를 감상할 수 있는 최적기이기에, 비어 있는 숙소가 없었다. 그래서 생쟈네의 숙소를 예약하였다.

숙소로 가는 길은 심상치 않았다. 구글맵을 따라 가다 보니 차는 비포장도로로 들어섰고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야산을 하나 넘게 되었다. 마치 국립공원 속을 차로 누비는 느낌이었다. 겨우겨우 숙소에 도착하니 주변에 아무런 건물도 없고, 오로지 예약한 농가민박 하나 뿐이었다. 주차를 하고 주인에게 연락하였더니 인심 좋게 생긴 프랑스 할아버지 한 분과 그의 아들이 우리 일행을 맞이하러 나왔다. 그들은 무척 흥분된 상태였다.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한국 사람을 처음 본다고 했다. 그들은 우리를 반기기 위해 환영 인사를 한국말로 시도했다. 약간 부담스러웠다. 숙소는 전형적으로 농가를 개조한 것이었는데, 완전히 현대식으로 깔끔하게 개조한 느낌은 아니었다. 농가의 정취가 묻어난다고 할까. 그들이 특히 강조했던 것은 물을 아껴 써 달라는 것이었다. 이 숙소는 상수도가 연결되어 있지 않아 지하수를 이용하는데, 올해 특히 가물어서 지하수가 부족하다고 했다. 한국말 '물'을 영어로 'Mul'이라고 적어서 여러번 우리에게 물을 아껴써 달라고 부탁하였다. 약간 당황스러웠다. 숙소 예약시 세탁기가 있다고 해서 그동안 입었던 옷들을 깨끗이 세탁해서 갈 까도 싶었었는데, 세탁기는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설거지를 할 때도 물을 콸콸 틀어놓지 말고 가급적 식기세척기를 이용해달라고 했다. 주변에 아무런 다른 건물도 없고, 숙소에 묵는 손님도 우리밖에 없으니, 숙소 현관문과 차량문도 열어놔도 된다고 했다.

너무 오지에 숙소를 잘못 잡은 느낌이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에어비앤비로 숙소를 예약하였는데 예약을 하기 전까지는 에어비앤비에서 숙소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숙소를 예약한 다음에라도 숙소 위치를 확인해보고 이렇게 산골짜기 오지에 숙소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취소하는 것도 고려해봤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다소 떨떠름하게 체크인을 한 다음, 미리 마트에서 장만한 식재료로 스테이크 등을 만들어서 먹었다. 숙소는 좋게 말해서 완전히 친환경이었다. 숙소 뒷마당에 차를 세워두었는데, 차까지 걸어가다보면 잔디에 있던 메뚜기들이 우수수 날아갔다. 어릴적 좋아했던 시골집이 생각났다. 여러 기억들이 연쇄적으로 튀어나왔다. 푸세식 화장실과 아궁이가 있었던 곳. 돌아가신 할머니는 아궁이에 불을 지펴 큰 솥에다가 국을 끓여주셨었다.

숙소 근처의 야생 라벤더 밭

숙소 주변을 산책하다가 버려진 야생 라벤더 밭을 발견하였다. 라벤더의 고장에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벤더 한 송이를 꺾어 보았다. 좋은 향이 났다. 숙소에 돌아와 맥주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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