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29 샤모니 몽블랑(Chamonix-Mont-Blanc)

2022. 8. 9. 08:10Diario de Viaje/France, Italy

에귀두미디 전망대에서 바라본 설산의 모습

오늘은 해발 4807m의 알프스 최고봉인 몽블랑 산(Mont Blanc)을 감상할 수 있는 에귀두미디(Aiguille du Midi) 전망대에 올라가기 위해 오전 7시경 일어났다. 해발 3842m에 있는 에귀두미디 전망대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샤모니 시내에서 몽블랑 케이블카(Compagnie du Mont Blanc)를 2번 타고 가야 하는데, 몽블랑 케이블카를 탑승하기 위해서는 사전 예약이 필수였고, 나는 최대한 이른 시간인 오전 7시 55분에 케이블카에 탑승하는 것으로 예약을 해 두었기 때문이었다. 다행이 숙소가 몽블랑 케이블카 승강장과 가까운 곳에 있어 늦지 않게 케이블카 탑승장에 갈 수 있었다. 어제는 비가 내렸었는데, 오늘은 날씨가 매우 화창했다. 샤모니 자체의 해발고도가 높고(1035m) 깊은 산 속에 있어서, 아침에 들이키는 공기가 매우 신선했다.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잠에서 깨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케이블카 승강장에 가니 암벽 등반 장비를 멘 산악인들이 이미 무척 많이 도착해서 케이블카 탑승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당연히 7시 55분에 케이블카를 탑승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이메일로 전송된 예약 내역을 자세히 살펴보니 탑승 시간과 함께 케이블카 번호(Cabin Number, 나의 경우 15번 케이블카였다)가 적혀 있었고, 케이블카 승강장 위 전광판에 현재 탑승하고 있는 케이블카 번호가 표시되고 있었다. 15번 케이블카는 오전 8시 10분경 상승을 시작하였다. 케이블카 탑승 시간이 지났어도 아직 예약내역에 기재되어 있는 케이블카 번호가 불려지지 않는다면 차분히 기다리면 될 것 같다.

사진 가운데 둥글둥글한 봉우리가 몽블랑 산의 최고봉이다.

케이블카를 두 번 타고나니 순식간에 에귀두미디 전망대에 도착하였다. 에귀두미디는 프랑스어로 '정오의 바늘'(Needle of the mid-day)이라는 의미인데, 정오가 되면 에귀두미디 산 위로 태양이 지나가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최대한 이른 시간으로 케이블카를 예약한 이유는 시간이 늦어질 수록 점점 전망대에 사람이 많아지고, 특히 유명한 포토 스팟인 '유리 상자'(Glass Box, 사방이 강화 유리로 되어 있어 허공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공간)에서 사진을 찍고자 하는 사람들의 숫자 역시 엄청나게 늘어나기 때문이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얻은 정보에 따르면 케이블카에서 내리자마자 아름다운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에귀두미디 전망대 내부 엘리베이터를 빨리 찾은 다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유리 상자'에서 사진을 먼저 찍고, 그 후에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라는 것이었다. 케이블카에서 내린 다음 최대한 서둘러서 내부 엘리베이터를 찾아 '유리 상자'가 있는 곳에 도달하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유리 상자' 내부가 보수 중이었다. 그래서 사진을 찍고자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던 것이었다. 인부 두 명이 '유리 상자' 바깥에 아찔하게 매달려 보수를 하고 있었다. 그 장면을 잠시 구경하였다.

암벽 등반중인 산악인들

에귀두미디 전망대 야외로 나가 그 유명한 몽블랑 산을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 유명한 명품 브랜드의 이름이기도 한 몽블랑 산의 모습은 의외로 둥글둥글하고 순둥순둥하고 소박한 느낌이었다. 이탈리아 돌로미티에서 보았던 뾰족뾰족하고 아찔아찔한 산세를 기대했었는데 살짝 김이 빠졌다. 눈으로 보았을 때는 그렇게 높아 보이지 않는데, 저 산이 서유럽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는게 잘 믿기지 않았다. 몽블랑이 프랑스어로 흰 산이라는 뜻인데, 아침에 해발 3842m에 서서 눈부시게 하얀 설산을 바라보니 내 영혼이 정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힘껏 들이마시는 공기도 맛이 다른 것 같았다.

몽블랑의 모습

에귀두미디 전망대 하부에는 몽블랑 산을 걸어서 올라가려는 산악인들로 북적였다. 유명한 등산복 브랜드인 아크테릭스(Arcteryx)에서 암벽 등반 교실을 연 것 같았다. 눈 밭을 한 발자국씩 디디며 앞으로 나아가는 산악인들을 먼 발치에서 지켜보면서 그들이 참 멋지다는 생각을 하였다. 케이블카 정류장에서 함께 등반 장비를 메고 신이 나 있었던 어떤 아버지와 아들을 포함하여, 몽블랑을 올라갈 생각에 들 떠 있던 여러 산악인들이 떠올랐다. 내가 지금까지도 스쿠버다이빙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지금 하얀 눈을 밟고 서 있는 저 산악인들은 얼마나 흥분되고 신이 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몽블랑의 설산에는 이미 산악인들의 발걸음으로 머리카락 두께처럼 얇은 선들이 여러개 그어져 있었다. 그 선들 위로 암벽 등반 장비를 짊어진 조그마한 검정색 점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산악인들의 길

에귀두미디 전망대는 어떻게 전망대가 만들어졌는지 등 구석구석 구경할 것들이 많았다. 고산병에 관하여는 출발하기 전 숙소에서 약을 먹고 왔기 때문에 그렇게 많이 어지럽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계단을 올라갈 때 상당히 힘이 들었다. 이쪽 저쪽에서 몽블랑 산을 충분히 감상하고 기념품으로 마그넷을 구입한 다음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샤모니로 내려왔다. 에귀두미디 전망대에서 내려가는 케이블카를 한 번만 타고 Plan de l'Aiguille에서 내린 다음, 약 1-2시간 걸어서 메흐 드 글라쓰 기차역(Gare du Montenvers Mer de Glace)까지 하이킹을 하는 것이 추천 코스였는데, 샤모니에서 기다리는 일행들이 있어 하이킹을 하지는 않았다. 

메흐 드 글라쓰 빙하

숙소에 가서 가볍게 점심을 먹고 메흐 드 글라쓰(Mer de Glace) 빙하를 보기 위해 샤모니 시내에 있는 몽땅베르 기차역(구글맵에는 La Mer de Glace - Montenvers라고 기재되어 있다)까지 걸어갔다. 몽땅베르 기차역은 샤모니몽블랑 기차역(Chamonix-Mont-Blanc) 뒤쪽에 있다. 깜찍한 빨강색 몽땅베르 산악열차는 샤모니를 출발하여 동쪽에 있는 메흐 드 글라쓰 기차역까지 산을 올라가는데 기차 진행방향의 왼쪽(내려올 때는 오른쪽)에 앉으면 탁 트인 멋진 풍경을 구경할 수 있다. 올라가는 기차는 승객이 많지 않아 기차 왼쪽에 앉아서 샤모니 협곡의 아름다운 모습을 구경하면서 갔다.

빙하 동굴

메흐 드 글라쓰 기차역에서 내려 빙하 동굴에 들어가보기 위해 메흐 드 글라쓰 케이블카를 타고 계곡을 내려갔다. 메흐 드 글라쓰 케이블카에서 내린 다음 한참을 계단을 따라 걸어내려갔다. 걸어내려가는 길에 우측 바위에 2003년과 같이 특정한 연도들이 표시되어 있었는데, 이는 해당 연도에 해당 위치에까지 빙하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1990년에는 메흐 드 글라쓰 케이블카 바로 앞에까지 빙하가 있었는데, 지구온난화로 인해 빙하가 점점 녹으면서 빙하의 높이가 계속 내려갔고, 2022년도 현재는 한참을 아래로 내려가야 겨우 빙하에 다다를 수가 있었다. 아마 몇 년 뒤에 다시 이 곳을 방문하면 오늘 내려갔던 높이보다 더 내려가야 메흐 드 글라쓰 빙하에 다다를 수 있으리라.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빙하의 속살

메흐 드 글라쓰 빙하 동굴은 무척 흥미로웠다. 빙하 내부로 직접 들어갈 수 있었고 그 속에는 얼음으로 만든 다양한 조각품들이 있었다. 얼음 조각품들보다는 빙하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오묘한 에메랄드 빛 색상이 내 흥미를 끌었다. 빙하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공기방울이 보였는데 옛날에 어디에선가 주워듣기로 그 공기방울은 수백만년(?) 전 빙하가 만들어질 당시 공기가 얼음 속에 갇히면서 남아있게 된 것이라고 한다. 차가운 빙하를 직접 손으로 만지면서 그 속의 공기방울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빙하 동굴에서 나와 다시 메흐 드 글라쓰 케이블카까지 계단을 올랐다. 상당히 힘이 들었으나 무언가 뿌듯했다. 메흐 드 글라쓰 기차역에서 멀리 메흐 드 글라쓰 빙하를 감상하였다. 강이나 바다와는 달리 멀리서 보는 빙하는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여서 흥미가 떨어졌다. 

산악열차를 타고 다시 샤모니로 내려왔다. 내려오는 기차는 만석이었다. 아마도 하이킹으로 메흐 드 글라쓰 기차역까지 내려온 사람들도 함께 탑승해서 그런 것 같다. 샤모니 시내를 구경하였다. 작지만 아름다운 곳이었다. 숙소에서 저녁을 먹고 라벨이 매우 인상적이었던 맥주(Brasserie du Mont Blanc La Blanche)를 마셨다. 아침부터 높은 곳에 올라갔다 와서 그런지 금방 나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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