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장

2008. 9. 15. 13:05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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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장1 - 황동규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 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 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群山)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 다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통통 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 몰래 시간을 떨어트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튕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 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白金) 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 다오


바람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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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포스팅.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포스팅에 대한 압박을 느꼈다.
남들이 많이 봐 주는 것도 아닌데 혼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시를 한 편 싣는다.


가끔씩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살아가면서 우린 어떻게든 인간관계를 유지하려고 하고,
특히 개인적으로 난 인간관계에 대한 집착이 남들보다 더 강하다.

인맥을 중시한다는 것보다는
한번 알게 된 인연을 소중히 하는 편인데,

한 밤 중에 누워서
죽음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면

내가 사랑하고, 내가 좋아하는
내 동생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과의 모든 관계가 끊어진다는 것에
숨이 막힐 때가 있다.

정작 죽는 순간에 어떨 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들과 다시는 지금처럼 지내지 못하고 영영 멀어진다고 생각하면

숨 막히고, 아찔하고, 허무하다.



내가 죽음을 싫어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 그 이유 때문이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이 멀어지고
나는 한없이 외로워진다는 것.


하지만 나도 언젠가는 죽음을 맞아들여야 할 터.
내 죽음의 모습은 저 시와 같았으면 좋겠다.

아니면 '버킷 리스트'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것처럼
죽어서도 세상을 감지할 수 있다면
하늘과 히말라야 높은 곳에 묻히고 싶다.


바닷가의 하늘.
CONTAX ARIA, Distagon 25mm F2.8, Kodak Tmax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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