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네

2009. 1. 9. 00:02PHotoS























이젠 좀 웃는 것처럼 보인다.
한쪽 눈이 살짝 올라갔다.















한 밤중에 눈이 많이 내려 서울의 도로가 마비되다시피 한 날이 있었는데
그날 벅찬 가슴을 안고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완전무장을 하고
삼각대와 필름 두통을 챙겨서 카메라를 들고 동네 놀이터로 뛰어나갔었다.


머리에는 군밤장수나 북한 인민군의 모자 같은 걸 쓰고
삼각대를 늘였다 줄였다 하면서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나로 인해서 놀이터에서 눈을 맞으며 다정하게 사랑을 나누던 한쌍의 연인은
카메라가 두려웠던지, 새벽 1시에 이상한 사람이 이상한 모자를 쓰고 추운 날씨에
입김을 후후 내뿜으며 씩 웃는게 이상해서였던지 모르겠지만 총총걸음으로 도망을 갔고


길을 거대한 장대빗자루로 눈을 쓸고 계시던 경비아저씨는
경계의 눈초리를 늦추지 않으셨다. (다른 동이라 그런가.)


앵글파인더가 없는지라 바닥에 들고간 수건을 깔고
포복자세로 셔터를 누르기도 했으나


그다지 마음에 드는 사진을 건지지 못하여 심히 실망스럽다.
Tmax 100은 펑펑 쏟아지는 눈을 표현하기에는 너무 부드러운 필름이었던가.



열정만 넘치지 아직도 갈 길은 멀다.



그래도 그네는 어김없이 나를 반겨주었다.




나로 인해서 황급히 도망간 연인을 위해서
그들이 그리고 싶어했을 하트를 대신
놀이터 한가운데에 커다랗게 그려주었다.











Contax ARIA, Planar 50mm F 1.4, Kodak Tmax 100
서울에 눈이 내리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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