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22 코르티나 담페초(Cortina d'Ampezzo)

2022. 8. 3. 23:39Diario de Viaje/France, Italy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

오늘은 돌로미티 동부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곳인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Tre cime di Lavaredo)에서 하이킹을 하는 날이다. '트레치메'는 이탈리아어로 '트레(Tre)'가 숫자 3을 뜻하고, '치메(Cime)'가 봉우리(영어로는 Tops)를 뜻한다. 즉 '라바레도의 3개의 봉우리'라는 의미이다. 돌로미티 사진을 검색하면 종종 3개의 거대하고 웅장한 봉우리들이 나오는데, 이 봉우리들 주위에 산책로 내지 등산로가 마련되어 있어 그 길을 따라 하이킹을 할 수가 있다. 

하이킹은 해발 2320m 높이의 아우론조 산장(Rifugio Auronzo)에서 시작된다. 아우론조 산장까지는 차도가 있어 차를 직접 몰고 갈 수 있다. 다만 아우론조 산장 주차장이 꽉 차서 차를 주차할 수 없는 상황일 경우, 아우론조 산장으로 올라가는 찻길이 통제되고, 미주리나 호수(Lago di Misurina)에 주차를 하고 버스를 타고 아우론조 산장까지 가야 한다고 한다. 버스를 타고 올라가는 것은 매우 번거로운 일이기에, 우리는 최대한 아우론조 산장 주차장에 주차를 하는 것을 목표로 숙소를 일찍 나섰다. 코르티나 담페초에서 아우론조 산장까지는 차로 약 40분 정도가 소요된다. 숙소를 오전 8시 10분경에 나왔고, 다행이도 아우론조 산장에 주차 자리가 있어 주차를 할 수 있었다. 이 때가 오전 9시경이었다. 나름대로 다른 여행객들보다 부지런히 일찍 숙소에서 출발하여 산장에 도착하였다고 생각하였는데, 이미 주차 공간의 3/4 정도는 차 있었던 것 같다.  

아우론조 산장

아우론조 산장에 주차를 하고 나서 하이킹 준비를 했다. 준비해온 등산화로 갈아신고, 등산배낭에 넣어온 짐들과 카메라를 정리하였다. 나머지 짐들은 차량 트렁크에 남들에게 보이지 않게 넣어놓았다. 이 곳까지 올라와서 차량털이를 하는 도둑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조금 마음이 놓였다. 다행이도 날씨가 화창하였고, 이미 해발 2300여 미터 높이에 올라와 있었기에, 저 멀리까지 돌로미티의 수많은 산봉우리들을 볼 수 있었다. 저 아래에는 오후에 가게 될 미주리나 호수가 내려다보였다. 심호흡을 하였는데 가슴이 탁 트였다. 소리를 마음껏 내지르고 싶었다. 내 안의 모든 근심, 걱정, 부정적 마음과 생각들을 다 토해내고 싶었다. 크게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 하이킹은 3개의 산장 - 순서대로 아우론조, 라바레도, 로카텔리 - 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된다. 첫 번째 산장인 아우론조 산장에서 두 번째 산장인 라바레도 산장(Rifugio Lavaredo)까지는 걸어서 약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길은 거의 평지이고, 트레치메의 남쪽 허리를 휘감아 돌아가는 코스이다. 이 코스에서는 트레치메의 봉우리들이 겹쳐서 보여 3개의 봉우리들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사방 곳곳에 피어있는 야생화를 감상하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슬슬 걸어갔다. 두 번째 산장인 라바레도 산장부터 세 번째 산장인 로카텔리 산장(Rifugio Locatelli, 구글맵에는 Dreizinnenhutte라고 나온다)까지는 걸어서 약 1시간 정도가 소요된다고 되어는 있으나, 라바레도 산장을 지난 직후에 큰 고개를 넘어가야 하고(고개를 넘어갈 때는 꽤 힘이 들었다), 그 뒤에도 오르락 내리락이 반복되었기에 체감상 더 오래 걸렸던 것 같다. 

라바레도 산장
돌아오는 길에 내려다보인 라바레도 산장

고개를 넘으니 서쪽으로 트레치메 3개 봉우리의 위용이 드러났다. 입이 떡 벌어졌다. 거인이 거대한 바위 3개를 들어다가 산 위에 냅다 꽂아놓은 것 같았다. 어떻게 저렇게 통바위로 된 산봉우리가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화창했던 날씨는 급격하게 흐려졌고, 급기야 비가 한 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방수가 되는 바람막이 잠바를 꺼내 입었다. 급격하게 추워졌고 장갑을 끼고 털모자도 썼다. 로카텔리 산장까지는 아직 한참 남은 것 같았는데 여기서 되돌아 가야 할지 판단을 못해 당황스러웠다. 비는 점점 거세졌다. 얼른 로카텔리 산장에 가서 점심을 먹으면서 비를 피하고 몸도 말리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길을 재촉하였다. 할머니를 모시고 가는 어린 소녀가 황급히 다가와 주차장으로 가는 방향이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비를 쫄딱 맞아 춥고 힘들어보였다. 나는 우리가 걸어왔던 길을 가리켰다. 너무 멀다고 생각했는지 다른 길은 없냐고 물었다. 나는 이 길이 가장 편하고 짧은 길이라고 말해주었다. 무사히 주차장까지 도착했기를. 한편, 비 예보를 보고 옷을 단단히 챙겨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로카텔리 산장
사진 우측의 붉은 지붕이 로카텔리 산장

로카텔리 산장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들이 발코니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로카텔리 산장은 굳게 닫혀 있었다. 산장이 아직 오픈을 하지 않았고, 이번주 주말부터 문을 연다고 하였다. 매우 당황스러웠다. 비는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비가 좀 잦아들면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멀리서 트레치메 3개 봉우리를 구경하였다. 산 아래에서 구름이 올라와 트레치메 3개 봉우리를 감싸고 있다가 지나가기를 반복하였다. 날씨가 화창했으면 더 좋았을텐데 좀 아쉬웠다. 비에 젖은 트레치메도 나름 운치가 있었다. 가만히 내리는 비를 보다 보니 들떠있었던 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비가 점점 잦아들었다. 함께 왔던 일행이 돌로미티 지역에서는 30분 이상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해주었다. 이 곳의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세상사도 그러한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 만난 트레치메 3개의 봉우리
산골짜기를 따라 올라오는 구름

다시 라바레도 산장을 향해 출발했다. 로카텔리 산장 위쪽 산에 동굴이 있는데 그 곳에서 트레치메를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들었다. 일행 중 일부가 그 동굴을 찾아갔는데, 트레치메는 구름이 가득 껴서 보이지도 않고, 인분이 있었다고 말해주었다. 아마 로카텔리 산장이 문을 열지 않아 여행객들이 동굴에 가서 볼일을 본 것 같았다. 메말랐던 산 전체가 비에 촉촉하게 젖어 돌아가는 길은 상쾌했다. 오랜만의 트레킹이라 더욱 기분이 좋았다. 고개를 넘어 내려가는데 멀리 라바레도 산장이 내려다보였다. 더 멀리에는 산골짜기에서 구름이 빠르게 올라오고 있었다. 신선이 된 기분이었다. 나이가 들 수록 산이 좋아진다. 

미주리나 호수

아우론조 산장에 주차해두었던 차를 몰고 미주리나 호수로 내려갔다. 호수 근처 레스토랑(Pizzeria Edelweiss)에 주차를 하고 점심을 먹었다. 파스타가 안 된다고 하여 피자 3판을 시켰는데, 3판 모두 다 맛있었다. 식당에 다른 한국 여행객들도 있었다. 호수 주위를 가볍게 걸으면서 사진을 찍었다. 호수를 전경으로, 산을 후경으로 두고, 가운데에 노란색 호텔을 둔 구도의 사진이 유명한 것 같아 따라서 찍어보았다. 호수는 아름다웠지만 전날 갔던 브라이에스 호수를 보았을 때의 그 강렬함은 없었다. 숙소로 돌아와 현지 와인(Alto Adige Sud Tirol Lagrein)을 마셨다. 오랜만에 땀을 흘린 다음에 마시는 와인이어서 더욱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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