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23 코르티나 담페초(Cortina d'Ampezzo)

2022. 8. 5. 00:57Diario de Viaje/France, Italy

친퀘 토리

어제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 트레킹을 하느라 체력 소모가 조금 있어서 오늘은 숙소에서 느긋하게 일어났다. 코르티나 담페초에서 차로 약 20분 거리에 있는 친퀘 토리(Cinque Torri)로 향했다. 친퀘 토리에서 '친퀘(Cinque)'는 '친퀘 테레'의 친퀘와 같은 것으로 이탈리아어로 숫자 5를 의미하고, '토리(Torri)'는 이탈리아어로 타워 내지 탑(영어로는 Towers)을 뜻한다. 즉 친퀘 토리는 5개의 타워라는 의미이다. 코르티나 담페초 시내를 벗어나 친퀘 토리로 가는 길은 매우 아름다웠다. 길에서 코르티나 담페초 시내가 내려다보였고 자연 터널도 있었는데, 차를 세워두고 사진 찍기가 마땅치 않아 마음에 담아두었다.

친퀘 토리를 올라가려면 체어리프트(Seggiovia Cinque Torri)를 타면 된다. 구글맵에서 Seggiovia Cinque Torri를 검색하면 체어리프트 주차장을 찾을 수 있다. 처음에 체어리프트를 타고 올라간다고 해서 큰 배낭을 들고 리프트를 타는 것이 안전상 이유로 주저되었었다. 하지만 막상 주차장에 도착하여 리프트를 보니 그러한 생각은 사라졌다. 보통 스키장에서 타는 것과 같은 체어리프트 앞에 플라스틱 재질의 투명한 원형 가림막이 추가로 설치되어 있었다. 가림막까지 설치되어 있으니 어린 아이들을 리프트에 태워서 함께 친퀘 토리를 구경하는 것도 그렇게 무리는 아니겠다고 생각했다.  

친퀘 토리, 각도에 따라 봉우리 느낌이 다르다.

리프트에서 내리니 눈 앞에 5개의 거대한 바위봉우리들이 떡 하니 나타났다. 누가 봐도 저 봉우리들이 친퀘 토리임을 알 수 있었다. 친퀘 토리 주변에 여러 트레킹 코스들이 있는데, 어제와는 달리 날씨가 매우 화창하고 햇살도 쨍쨍 내리쬐고 있어, 친퀘 토리 앞까지만 갔다가 돌아오는 1시간 짜리 매우 쉬운 트레킹 코스(그래도 등산화는 필수)를 택하였다. 산책로에는 야생화가 만발해 있었고 멀리 돌로미티 지역의 아름다운 산맥들과 다음에 가게 될 라가주오이 케이블카도 보였다. 이 지역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군과 오스트리아군의 격전지였던 곳이어서(추후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 되었다), 산책로 중간 중간에 참호와 같은 여러 전쟁 유적들이 있었다. 돌로미티 지역은 원래는 오스트리아의 영토였으나, 이탈리아군이 승리하여 현재 이탈리아의 영토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돌로미티 지역을 다니다 보면 독일어가 많이 보였고, 식당에서 독일식 음식들(슈니첼, 소세지 등)을 많이 파는 것 같았다. 배경지식을 조금 더 알고 왔으면 좋았을 걸. 친퀘 토리 주변을 산책하고 있는 이탈리아 군인들(군복을 입고 있었다)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에게는 자랑스러운 승리의 역사이리라. 친퀘 토리 봉우리들에 가까이 다가가니 암벽 등반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늘 새로운 것을 보면 그렇듯 나도 암벽등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체적으로 친퀘 토리는 어제 갔었던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 만큼의 감흥은 없었다. 아마도 내가 올라간 시간대가 친퀘 토리 봉우리 쪽으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시간대라 그런가 싶다. 친퀘 토리는 일출 사진으로 유명하다고 하던데, 리프트가 운행되는 시간대가 아니어서 일출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서는 직접 걸어서 산을 올라와야 한다. 이번 여행에서는 그런 사진을 찍을 여유가 없었다. 체어리프트를 타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스키장에서는 스키를 타고 내려가기 때문에 내려가는 체어리프트를 별로 타본 기억이 없다. 내려가는 체어리프트는 매우 재미있었다.

라가주오이 케이블카, 스릴 넘친다.

다시 차를 몰고 약 10분 떨어진 라가주오이 케이블카(Cable Car Lagazuoi) 주차장으로 갔다. 운이 좋게도 별로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라가주오이 케이블카를 타고 산을 올랐다. 고도가 매우 빨리 높아졌고, 케이블카를 타는 것만으로도 몹시 흥분되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서 보니 사방으로 돌로미티 동부지역의 산세가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저 멀리 아래 방금 전에 다녀왔던 친퀘 토리 5개의 봉우리가 조그맣게 보였다. 높이 올라오니 멀리 볼 수 있다. 숨이 탁 트였다.

라가주오이 산장의 모습
라가주오이 산장 올라가는 길

조금 걸어 올라가 라가주오이 산장(Rifugio Lagazuoi)에 도착하였다. 무려 해발 2752m에 산장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고산의 햇볕을 맞으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날씨가 조금 흐려지는 듯하여 실내에서 일행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산장이라서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슈니첼(돈까스), 돼지고기 목살 스테이크, 스크램블 에그를 시켰는데 매우매우 맛있었다. 음식도 맛있고, 경치도 끝내주는 곳이다. 점심을 먹고 산장 주변을 산책하기로 했다. 아래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또다른 웅장한 산맥이 눈에 띈다. 아직 가보지 못한 히말라야에 온 것만 같다. 걸어서 약 15분 거리에 '십자가'가 있다고 해서 그곳까지 걸어가보기로 하였는데, 코스 자체는 평평한 편이었으나, 고산 증세가 염려되어 중간에 돌아왔다. 내려가는 케이블카 역시 스릴넘쳤다.

라가주오이 산장에서 본 웅장한 산맥

코르티나 담페초로 돌아와 시내 구경을 하였다. 코르티나 담페초에서 산악 마라톤 대회가 열리고 있어 시내가 떠들썩하였다. 2026년도에 밀라노와 더불어 이 곳 코르티나 담페초에서 동계올림픽이 개최된다고 한다. 작고 아담하지만 있을 것은 다 있는 매력적인 산악도시이다. 코르티나 담페초에 파타고니아 브랜드의 매장이 있다고 하여, 돌로미티 지역에서만 파는 티셔츠가 있을까 싶어 방문하였지만, 아쉽게도 그런 티셔츠는 없다고 하였다. 내일이면 이 도시를 떠나야 한다. 아쉬운 마음에 기념품과 사진집을 구매하였다. 이 곳에서 3박이면 충분하겠지 싶었으나 너무너무 모자랐다. 한 일주일 정도는 더 머물렀으면 싶었다. 숙소로 돌아와 또다른 현지 와인(St Michael Eppan Lagrein 2021)을 마셨다. 깊은 산 속에서 마시는 와인은 정말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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