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08 산세바스티안(San Sebastián, Spain)

2022. 11. 30. 21:41Diario de Viaje/Northern Spain

라 콘챠 해변에서 산세바스티안 구시가지를 바라본 모습

산세바스티안(San Sebastian, 바스크어로는 도노스티아)은 단위면적당 미슐렝 스타 레스토랑이 가장 많다고 알려져 있는 미식의 도시이다. 이 곳까지 온 마당에 미슐렝 스타 레스토랑에서 한 끼를 즐겨보는 것도 의미가 있었겠으나 사정상 아쉽지만 먼 미래에 다시 한번 방문하기로 하고, 그 대신 여러 핀쵸바(Pincho Bar)에 들러 핀쵸들을 먹기로 했다.

아름다운 조형물
산세바스티안 대성당의 모습

숙소 주인이 추천해주었던 핀쵸바는 총 두 곳이었다. 그 중 아타리(Atari Gastroleku)라는 핀쵸바에 먼저 가보기로 했다. 숙소에서 아타리까지는 걸어서 약 25분이 걸리는 거리였는데, 가는 길이 모두 평지여서 큰 불편함 없이 산세바스티안의 시내 곳곳을 구경하면서 걸어갈 수 있었다. 중간에 산세바스티안 대성당을 지나게 되었는데 화창한 날씨 탓이었는지는 몰라도 다른 곳에서 보았던 성당들에 비해서 특히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아타리 핀쵸바 외관
바깔라오 크로켓
새우 브로체타
천상의 맛 삼겹살 핀쵸
소꼬리 핀쵸
아타리 핀쵸바 내부

약 1시 정도에 아타리 핀쵸바에 도착하였다. 스페인의 점심시간이 2시부터 시작되는 것을 감안할 때 상당히 일찍 도착해서 여유롭게 핀쵸를 즐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산이었다. 지리적으로 프랑스에서 가까워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관광지의 유명한 식당이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아타리 핀쵸바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핀쵸바에서 어떻게 주문을 해서 먹는 것인지 몰라 슬그머니 안으로 들어가서 입구 가까운 바에 서서 쭈뼛쭈뼛하고 있으니, 바텐더가 자연스럽게 음료부터 주문을 받았다. 생맥주 한잔과 눈 앞에 보이는 핀쵸 두 종류를 주문했다. 그 사이에 조금 넓은 스탠드 테이블에 자리가 나서 그 곳으로 옮겼다. 맥주와 핀쵸는 곧바로 나왔다. 바깔라오 크로켓 핀쵸(Croqueta Bacalao, 바깔라오는 염장한 대구를 말한다)와 바게뜨 빵 위에 새우가 올라가 있는 핀쵸(Brocheta Langostin)였다. 한 입씩 베어물었다. 음. 이 맛은... 바깔라오 크로켓은 익숙한 맛이었다. 바게뜨 빵 위에 새우가 올라간 핀쵸는 담백하면서도 무척 맛있다. 핀쵸 한 두개를 먹고 다른 핀쵸바로 옮기려 했는데, 아타리의 나머지 핀쵸들이 너무도 먹고 싶었다. 구글 검색을 해보니 푸아그라가 올려진 핀쵸가 무척 맛있다는 평이 있었다. 그 핀쵸를 주문하였으나 아쉽게도 품절이라고 했다. 다른 핀쵸를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돼지고기 삼겹살 핀쵸(Panceta)와 소꼬리 핀쵸(Carrillera) 2개를 추천해주었다. 고민하다가 삼겹살 핀쵸를 주문했다. 조금 뒤에 삼겹살 핀쵸가 나왔고 한 입 베어물었다. 이 맛은 가히 천상의 맛이라고 할 수 있었다. 너무너무너무 맛있었다. 순식간에 삼겹살 핀쵸를 먹고 난 다음에 다시 소꼬리 핀쵸를 시켰다. 한번에 다 시킬걸 아까 전에 고민은 왜 했던 것인지. 소꼬리 핀쵸 역시 매우 훌륭했다. 짜지도 않고 담백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이었다. 이렇게 먹으니 배가 불러왔다. 계산을 했는데 다 합쳐서 27.9유로(바깔라오 크로켓 2개에 2.5유로, 새우 핀쵸, 삼겹살 핀쵸, 소꼬리 핀쵸 각 1개에 5.5유로, 생맥주 한 잔에 1.7유로), 한국돈으로 약 38,000원 정도가 나왔다.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생각했다. 여러 종류의 음식들을 소량으로 조금씩 다양하게 먹을 수 있고 식사 시간도 그렇게 길게 소요되지 않아서(일반적인 스페인의 레스토랑에서 오늘의 메뉴를 먹게 되면 보통 2시간 정도가 걸린다), 이렇게 핀쵸바에서 음료와 함께 핀쵸를 먹는 것이 나의 스타일에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처음 맛본 아타리 핀쵸바의 핀쵸들은 정말정말 맛있었고 그 기억이 너무도 행복해서, 이렇게 글로 남기다보니 글이 상당히 길어졌다.

산세바스티안 구시가지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을 걷는 순례자의 모습

배가 무척 불렀지만 함께 간 일행이 디저트로 바스크 치즈케잌을 먹겠다고 하여 그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라 비냐(La Vina)라는 레스토랑에 갔다. 가는 길에 소화가 좀 될 줄 알았는데, 아타리와 마찬가지로 구시가지에 있어 그리 오래 걷지 않아 도착하였기 때문에, 배는 여전히 든든한 상태였다. 라 비냐 역시 핀쵸를 파는 핀쵸바였는데, 바스크 치즈케잌으로 더 유명한 것 같았다. 치즈케잌을 구매하러 내부로 들어가니 이 곳 역시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주문도 줄을 서서 차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팔을 높게 들어 큰 목소리를 내거나 눈치를 보다가 바텐더와 눈이 마주칠 때 재빨리 주문을 하는 시스템 아닌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것 같았다. 무슨 경매장에 온 것 같았다. 그만큼 치즈케잌을 주문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찌어찌 케잌을 하나 주문해서 포장을 해서 밖으로 나왔다.  

바스크 치즈케잌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라 비냐 레스토랑
치즈케잌 주문이 쉽지 않다.
바스크 치즈케잌 무척 맛있음

산세바스티안에는 유명한 해변이 두 군데 있는데, 그 중 한 곳인 라 콘차(La Concha) 해변(다른 한 곳은 Zurriola 해변)에 가서 소화를 좀 시킨 다음에 케잌을 먹기로 했다. 해변 가까이 다가가 그늘에 앉아 물놀이 하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수영복을 챙겨왔으면 좋았을 걸 아쉬웠다. 대서양의 바다는 바르셀로나에서 보았던 지중해 바다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라 콘차 해변은 멀리 나가도 물이 얕아서 그런가 아이들도 많이 뛰어놀고 있었다.

라 콘챠 해변의 돈키호테와 산초의 동상, 맥락은 잘 모르겠다.
라 콘챠 해변에서 휴식을

배가 어느정도 꺼진 다음에 근처의 벤치에 가서 포장해간 바스크 치즈케잌을 맛보았다. 한국에서도 요즘 바스크 치즈케잌이 유행이라고 하던데 정작 먹어보지는 못했던 터라 내게는 라 비냐의 치즈케잌 맛이 바스크 치즈케잌 맛의 표준이 될 터였다. 다른 치즈케잌과 차이점은 피자를 먹는 것처럼 케잌 안의 치즈가 쭉 늘어난다는 점, 무척 부드럽고 폭신폭신하며 달달한 맛이라는 점 정도가 아닐까 싶었다. 바스크 치즈케잌 역시 매우매우 맛있었다. 내가 정말로 미식의 도시에 와 있구나 하는 생각을 또 했다. 산세바스티안의 거리를 걸으면서 느꼈던 것인데, 다양하고 고급진 식재료들을 모아서 파는 편집샵 같은 슈퍼들이 무척 많이 있었다. 

멀리서 바라본 라 콘챠 해변
거친 대서양, 물 색이 아름답다.

케잌까지 먹고 나니 다시 배가 불러 산책을 하기로 했다. 산세바스티안 구시가지 쪽을 한바퀴 바닷가를 따라 빙 둘러 산책하는 코스가 있었다. 바다를 가까이에서 보니 대서양의 세찬 힘이 느껴졌다. 초저녁쯤 숙소 주인이 알려준 두번째 핀쵸바인 148 Gastroleku에 찾아갔다. 역시 구시가지에 있었다. 너무 일찍 가서 그런지 오픈 준비를 하고 있었다. 148 핀쵸바는 과감히 포기하고 숙소로 가는 길에 있는 다른 핀쵸바에서 핀쵸를 포장해 숙소에서 먹기로 했다. 숙소에 가는 길에 있는 핀쵸바를 검색해본 결과 카사 바예스(Casa Valles)가 괜찮은 것 같았다. 카사 바예스에 도착해서 맥주 한 잔과 바게뜨 위에 토핑이 올라간 핀쵸 2개, 그리고 미트볼 핀쵸(Albondigas en sals, 3.1유로)를 시켰다. 아타리 만큼의 화려한 맛은 아니었지만 조화로운 맛이었다. 숙소에서 먹기 위해 갈리시아 스타일의 문어(Pulpo Gallega, 16.5유로)를 하나 포장했다. 

까사 바예스 내부 모습, 주인 아저씨가 친절했다.
소박하지만 정말 맛있었던 핀쵸
미트볼 핀쵸
포장해 와서 숙소에서 먹었던 갈리시아식 문어, 맛있음

숙소에 도착하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산세바스티안의 밤을 즐기고 싶었으나 사정상 그럴 수 없어서 아쉬웠다. 맥주 한 캔에 포장해 간 문어를 곁들여 먹으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의 즐거움을 되새겼다. 바스크 지방에서 먹는 문어도 이렇게 맛있는데, 정작 본거지인 갈리시아에 가서 문어를 먹으면 얼마나 더 맛있을까. 거창지는 않지만 소소한 미식을 즐길 수 있는 도시. 이런 산세바스티안에 나중에 꼭 다시 오고 싶다고 생각했다. 맛있는 음식과 술을 마시면서 즐겁게 웃을 수 있는 친한 친구들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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