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3-27 아이슬란드 레이니벨리르에서 스터쓰바르피요르드로(From Reynivellir to Stodvarfjordur, Iceland)

2022. 8. 16. 06:31Diario de Viaje/Iceland

숙소에서 멀리 요쿨살론 빙하가 보였다. 황량함이 좋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햇살이 환하게 비치고 있었다. 어제 밤에 보았던 오로라의 황홀한 여운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이렇게 빨리 오로라를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구름 예보만 보고 다니면 매일매일 쉽게 오로라를 볼 수 있겠다고 생각하였다. 자신감이 넘쳤다. 오늘 밤에도 오로라를 보기 위해 구름 예보를 살펴보았다. 아이슬란드 동쪽 외에는 전부 구름으로 뒤덥힌다는 예보가 나왔다. 1번 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계속 가게 되면 길은 이내 북쪽으로 접어들고, 결국 반시계방향으로 아이슬란드 전체를 한바퀴 돌게 된다. 그래서 1번 도로를 링로드(Ring Road)라고 부른다. 그런데 3월에는 아이슬란드 북쪽이 바람도 거세고 무척 춥다고 하여 이번에는 북쪽을 아예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래서 당초 계획상 회픈(Hofn)을 동쪽의 마지노선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구름 예보상 훨씬 더 동쪽, 북동쪽으로 가야 오늘 밤에 오로라를 볼 확률이 있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할지 고민이 되었다. 어제 오로라를 원 없이 보긴 봤지만 사진으로 잘 담기지가 않았기에, 오늘은 오로라를 만나 사진 촬영에 더 신경쓰기로 결론내렸다. 이 결정으로 결국 계획에 없었던 아이슬란드 동부 지역의 웅장한 피요르드들을 구경하게 되었다.

숙소 앞 풍경

호텔이라 조식이 제공되었는데, 방과 레스토랑과 약간 떨어져 있어 상쾌한 기분으로 레스토랑까지 걸어갔다. 배경으로 높은 산이 보였는데 무척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종류를 잘 알지 못하는 많은 새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잔디밭에는 이슬이 맺혀 있었다. 가슴 깊이 들이마시는 아침 공기는 더할 나위 없이 신선했다. 호텔 조식은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맛있었다. 점심과 저녁식사가 부실할 것 같아서 최대한 든든히 속을 채웠다.

동부 피요르드로 향하는 1번 도로

체크아웃을 한 후 차를 몰고 동쪽으로 향했다. 날씨는 점점 흐려졌다. 회픈에 들러 네토(Netto)라는 슈퍼마켓에서 오늘 저녁거리로 양고기를 샀다. 아이슬란드 여행을 하면서 3종류의 슈퍼마켓에 들렀었는데, 어제 비크(Vik)에서 갔었던 크로난(Kronan), 오늘 회픈에서 들른 네토, 그리고 서부 쪽에서 가본 보너스(Bonus)가 그것이다. 물품의 다양성이나 품질의 면에서 보너스 > 네토 > 크로난 순서로 좋았던 것 같다. 또한 N1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넣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언제 주유소가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주유소가 보일 때마다 기름을 가득 채워두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회픈에는 파쿠스(Pakkhus Restaurant)라고 랑구스틴(Langoustine) 요리로 유명한 식당이 있는데, 가격이 매우 비싸(1인 당 7-8만 원 정도는 줘야 한다고 했다) 가지는 않았다.

여행 내내 함께 했던 자동차
검은 모래 해변이 여러 군데 있다. 바다가 거칠다.

회픈에서 나와 1번 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계속 가다 보면 터널(무료이다)을 지나게 되는데, 그 터널을 빠져나오자 산이 달라보였다. 훨씬 더 깊은 산 속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길은 이내 북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길 오른쪽에는 아이슬란드의 거친 바다가 모습을 드러냈다. 길은 아찔했다. 거의 가드레일이 없는 느낌이었다. 아이슬란드에는 이런 아찔한 길이 많다고 했다. 중간에 쉼터가 있어 차를 세우고 경치를 구경하였다. 저 멀리 웅장한 설산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아이슬란드 동부의 피요르드 모습이었다. 비현실적이고 무척 고독한 풍경이었다. 세상에 나 혼자 있는 것 같았다. 입국 면세점에서 샀던 감초 초콜렛을 씹어먹으면서 운전을 했다.

동부 피요르드의 웅장한 설산이 보인다.

오늘의 숙소는 스터쓰바르피요르드(Stodvarfjordur, 아이슬란드어로 Stöðvarfjörður로 표기한다, ð는 영어 th발음이다)에 있는 'Kjartan님의 숙소'였다. 에어비앤비로 예약하였다. 스터쓰바르피요르드에서 약간 남쪽에 있는 브레이쓰달스비크(Breiddalsvik, 아이슬란드어로 Breiðdalsvík로 표기한다)에 숙소를 구할 것인지, 아니면 골짜기 2개를 더 지나 북쪽으로 가서 레이싸르피요르드(Reydarfjordur, 아이슬란드어로 Reyðarfjörður로 표기한다) 쯤에 숙소를 구할 것인지 고민을 하였었다. 밤이 되었을 때 어느 지역의 밤하늘이 맑을지 확실치 않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남쪽부터 오늘 숙소를 잡은 스터쓰바르피요르드까지는 폭설이 내렸고, 레이싸르피요르드(Reydarfjordur)까지는 구름이 몰려가지 않아 밤하늘이 맑았던 것 같다.

동부 피요르드 가는 길

점심을 생략하고 스터쓰바르피요르드까지 달려왔기 때문에 숙소에 체크인을 하자마자 챙겨간 봉지라면을 끓여먹었다. 꿀맛이었다. 숙소는 무척 아늑했다. 인테리어가 화려하지는 않았는데, 북유럽 특유의 감성이 느껴졌다. 숙소에 체크인을 하기 전부터 눈이 조금씩 내리고 있었는데, 눈발이 점점 굵어지더니 폭설이 내리기 시작했다. 마을 주변의 길은 전부 빙판이 되었고, 순식간에 폭설로 인해 집 안에 갇히게 되었다. 밤에 차를 몰고 레이싸르피요르드 지역까지 가볼까 싶었었는데, 아이슬란드 도로 상태를 알려주는 웹사이트(https://safetravel.is/conditions)에는 브레이쓰달스비크로 가는 길과 레이싸르피요르드로 가는 길 모두 극도로 미끄럽다고 나와 있었다. 안그래도 아이슬란드의 밤운전은 가급적 피하라는 얘기를 들었던지라, 깔끔히 오로라를 찾으러 가는 것을 포기하고 숙소에서 푹 쉬기로 했다.

숙소 풍경. 폭설이 내렸다.

바깥에 내리는 눈을 바라보면서 양고기를 오븐에 구워먹었다. 정말정말 맛있었다. 뉴질랜드에서 먹어봤던 양고기보다 더욱 맛있었던 것 같다. 폭설로 인해 아이슬란드 동부 피요르드의 외딴 마을에 갇혀버렸지만 기분은 오히려 홀가분했다. 세상이 나를 고립시킨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세상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나온 것 같았다. 지구에서 무척 외딴 곳에 있는 나라 아이슬란드에서도 또 무척 외딴 곳에 와 있는 것이었다. 스쿠버다이빙을 하면서 깊은 바닷속에 들어가면 가끔씩 명상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곤 했었는데, 그와 유사한 기분이었다. 무척 좋아하는 백석의 시가 떠올랐다. 눈이 정말로 푹푹 내리고 나는 응앙응앙 우는 흰 당나귀가 된 것만 같았다. 비록 계획대로 오로라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오로라가 아니었다면 결코 이곳까지 와보지는 못했을 것이리라. 오래토록 잊지 못할 밤이었다.      

숙소 풍경. 다행이 밤이 되어 눈은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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